1. 왜에서의 백제유민백제가 서기 660년에 신라와 당나라 군사에게 멸망시 백제 마지막 왕인 의자왕은 일본에 있던 그의 누님인 제37대 '제명(齊明, 사이메이)천황'에게 구원군을 요청했으나 도중에 제명천황이 죽자, 일찍이 왜로 와 있던 의자왕의 아들 인 중대형(中大兄, 나카노오에)이 이끄는 구원
백제유민들이 자신들의 문화적 전통이었던 백제 조각양식으로써 조성한 귀중한 예로, 따라서 전반적인 양식은 7세기 초로 편년해도 좋을 정도로 고식을 띠고 있다. 비록 시대는 늦지만 구양식을 답습한 것이므로 호류지 삼존상의 계보추정에 귀중한 단서를 제공한다. 재료 역시 돌이지만 높이 43cm의
1-1) 唐으로 간 백제유민들
당시 당으로 보내진 이들의 행적에 대해서는 의자왕과 태자 융 등 일부 귀족에 대해서만 그 행적을 알 수 있을 뿐 대부분 포로들의 행적은 알 길이 없다.
의자왕은 당에 끌려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병사하였고, 태자 융은 당의 수군을 거느리고 백제 부흥운동군의 거점인
백제, 고구려, 신라와의 문화교류, 근세의 조선통신사와 막부간의 교류,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대의 한류열풍이다. 한국이 일본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이 세 가지 테마를 중심으로 자세히 전개해 나가도록 하겠다.
Ⅱ. 본 론
1. 고대- 최조의 한류 , 고대 삼국과 일본의 문화교류
<1> 백제의
백제, 고구려, 신라와의 문화교류, 근세의 조선통신사와 막부간의 교류,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대의 한류열풍이다. 한국이 일본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이 세 가지 테마를 중심으로 자세히 전개해 나가도록 하겠다.
Ⅱ. 본 론
1. 고대- 최조의 한류 , 고대 삼국과 일본의 문화교류
<1> 백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