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의 내력은 일찍부터 기록에 오르내린 울릉도와 관련 지어 살펴보아야 한다. 본토 유민들에 의해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울릉도의 우산국이 신라에 귀속된 것은 6세기 초 (512) 후였다. 이 사실은 삼국사기 신라본기 지증왕 13(512)년에 "6월에 우산국이 신라에 속했다"는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독도 영유권문제에는 역사적, 지리적, 서지학 등을 통틀어서 종합적인 인식을 요구하지만, 그 주권에 대한 최정적인 결정은 ‘국제법’의 인식 및 시각에 달렸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얼마 전 까지만 해도 한국 정부는 독도 문제에 대해 “분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유로 다양하고 적극적인
문제를 지원한다. 필요시 중국과 일본을 견제할 수 있도록 관계개선에 나서고 있다.
이렇게 미국이 사실상 독도문제에 관해 침묵을 지키고 있는 배경에는 캐나다와 마키아스 씰(Machias seal) 섬을 둘러싼 영유권 분쟁에 직면해있는 상황도 있다. 양국 모두 영유권을 주장하는 양국 국경에 위치한 이 섬
독도를 강원도 울진현 소속으로 뚜렷하게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숙종실록에서는 안용복이 일본에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임을 확인한 것에 대한 기록이 남겨져 있다.
1897년(고종34년)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개칭한 후에도 울릉도에 대한 일본인들의 불법 침입과 삼림 벌채가 심각한 문제가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