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를 재배하였다고 기록하였고, 삼국사기에서도 ‘남쪽 늪지대에 도전을 만들기 시작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하여 4세기에는 서해안지역에서 대규모의 저수지가, 또 6세기에는 동해안지역에서 대규모 관개시설이 축조되었다. 이 시대의 벼농사는 저습지대를 중심으로 한 원시적 수
벼가 자라날 논에 씨를 뿌리면 그 자리에서 벼가 자라도록 한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조선초기까지는 우리나라 벼농사는 주로 수경직파법(무논직파재배)가 이루어졌다. 그 후 물관리기술이 향상되면서 조선말기 이후는 대부분 손이앙재배가 이루어졌으며, 현재까지 이어졌다. 직파재배에서 손이앙재
Ⅰ. 개요
국토 및 환경보전, 보건 휴양, 전통 문화의 함양 등 다면적 기능이 발휘 될 수 있도록 농촌 지역을 활성화해야 한다. 농촌 지역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농림업을 비롯한 산업 활동의 진흥을 기본으로 하면서 생활 환경이나 경관을 정비하고 의료, 교육, 복지시설을 충실히 하여 젊은이의 농촌
계곡을 막아 물을 가두어두는 저수지인 제언(堤堰)중십의 수리시설을 만들었다.
조선왕조의 위정자들은 농사에 필수불가결한 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적기부터 수리시설을 축조하는 데 주목하였다.
조선조 현종 3년 (1662) '진휼청제언사목'이라는 이른바 정책발표를 한 이래 조선전기(15세기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