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들레르는 1821년 4월 9일 프랑스와 보들레르를 부친으로, 카롤린느 드파이를 모친으로 파리에서 태어났다. 파리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한 부친은 자유주의 사상에 젖은 지적인 귀족으로, 미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아마추어 화가이기도 했다. 모친은 영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고아출
보들레르와의 연관성을 지적해왔다.
현대시의 아버지 랭보의 보들레르에 대한 찬양을 인용하자면 "최상의 견자(見者), 시인들의 왕, 진정한 신"이라고 했으며 발레리(Paul Val ry)는 "보들레르와 더불어 프랑스 시는 마침내 민족적인 한계성을 넘어서 성장했다. 프랑스 시는 곳곳에서 독자를 발견했으며,
시의 본질 자체이다. 이처럼 시는 묘사될 수 없는 것이다. 외관 너머로 사물의 영혼에 이르기 위해서는 상징을 사용하고 시는 암시적이고 유동적이고, 음악적이 며 매혹적이다. 시는 불가지한 것과 심층의식의 철학과 관련하게 된다. 그것은 자 기 작품 속에 표현되는 시인 각자의 꿈인 것이다. 그
1. 상징주의의 발단
프랑스 시단(詩檀)에서 일어난 상징주의 운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1885년부터 나타난 화가․조각들의 태도 혹은 다소 느슨하게 조직된 운동의 한 경향을 뜻한다. 상징주의는 인상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났으며, 쿠르베에 의해 공식화된 ‘사실주의의 원리’에 반발하였
시의 현실적인 상황과 문학적 과제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비오는 길』이 일제가 강요한 파행적인 식민지 근대화에 대한 심미적인 반응을 보여준다면 해방이후 쓰여진『임오년의 서울』은 민중에 대한 재발견과 북한 사회주의에 대한 소극적인 동조의식이 드러남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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