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지 않는, 아나르시가 지배하는 완전한 봉건정체가 출현하였다고 하였다. 이렇게 해서 자립적 영주지배권을 구축하고 있었던 중세의 묵은 지배구조가 이미 소멸되어 단순한 역사적 추억으로 되어 있던 절대왕정시대에, 절대주의의 이상인 통일적 주권적 국가의 반전상(反轉像)으로서 주권의
봉건제의 해체에 따른 봉건 가신단과 그 가족 및 도시길드의 해체(봉건 말기에 접어들자 길드의 규제를 받지 않고 자유로이 생산, 판매할 수 있는 농촌에서 모직공업 등의 공업이 부흥한다. 농촌공업의 부흥은 도시길드의 상대적인 쇠퇴를 불가피하게 만들었다.)에 의한 구성원들의 임금노동자화, 죄수
봉건제도를 실시하였다. 특히 주의 봉건제도는 서양과는 달리 씨족적 질서를 근간으로 하는 종법제도에 기초함으로써 주왕실과 책봉된 제후들사이의 혈연적 유대를 강화하고자 하였다. 한편 이 때에 주왕은 하늘의 뜻을 받아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는 天命사상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중국이 천하의 지
국가권력의 "계획적인 붕괴(H.Mitteis)"는 분봉과정에서 결국 공공적-----관료정치적 행정형태와 행정제도를 위하여 어떠한 여지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봉건국가는 근대의 "일원적 평면지배국가"(Th. Mayer)에 대한 반대로 "개인결합국가"의 원형으로 나타났다.
지배기초로서 봉건제에 전적으로 근거하
주대의 봉건체제가 붕괴하면서 이전에는 누릴 수 없었던 사상의 자유와 지식의 확대가 이루어진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귀족에게 독점되어있던 지식 권력이 일반서민에게도 나누어지면서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신분상승을 실현하려는 사회적 욕구가 발생했던 것이다.
(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