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을 인정하고 우리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을 지지하였기 때문에 북․미관계와 남북관계가 어느 정도 진전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힘의 외교를 앞세운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북․미관계는 교착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 이후 더욱 강경해진 미
한국의 대러시아 이니셔티브에 대해 소외감을 느낀 일본은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이러한 외교상의 지체현상을 극복하고자 노력하였으며, 또한 러시아와 중국의 대한반도 영향력에 대해서 막강한 경제력을 배경으로 하는 북한카드를 활용함으로써 견제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게 되었다.
미국의 대북한정책은 전면적인 재검토와 수정을 받게 된다.
북 미간 미사일 회담의 전개과정
클린턴 정부는 지속적인 대북포용정책의 일환으로 1994년 북한과 제네바 핵합의를 도출해 낸 데 이어 1995년 KEDO와 북한간에 경수로 공급협정이 타결됨에 따라 일단 북한의 핵개발에 대한 안전장치를 확보
북방외교가 일정 정도 성과를 거두고 핵의혹에 따라 국제사회의 핵사찰 압력에 따른 안보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러한 위기상황의 돌파구로서 북한은 미국, 일본 등을 비롯한 서방국가들과의 관계개선 필요성이 생겼으며 제한적이나마 개방정책을 추진할 필요성이 생겼던 것이다. 이러한 측면
대북 교류협력정책만을 추구하고 평화안보정책을 소홀히 할 경우,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없이 남북한간 교류 협력만 진행되고 긴장은 항상 발생할 가능성이 존재하는 중국․대만형으로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반드시 정치적인 관계 정상화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
한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