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장관과 미국에서도 정답을 알고 있었다. 96년 당시 아직 이 사건이 서해교전이라고 불리지 않던 시절 이양호 국방장관은 국회에서 국민회의 천용택 의원으로부터 지난 4·11총선 후 북한 함정의 서해상 도발에 대한 정부 대응이 소극적이었던 이유를 질문 받고, 정확히 다음과 같이 답했다.
북한과 남한은 원래 같이 민족임을 강조한다. 많은 학자들에 의해 논해지고 있는 민족의 환상성에 대해 논하지 않더라도 민족을 강조하는 통일관은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 민족주의는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민족끼리의 결속을 중시하는 한편 그렇지 못한 다 민족에 대해서는 굉장히 배타적이다
Ⅰ. 서론
6.15 공동선언 이후 국민들의 북한과 통일에 대한 의식이 많이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반공, 반북 이념교육 중심의 통일교육은 이미 낡은 것이 되어 버렸다. 또한 이 때문에 정부와 민간이 불필요한 마찰을 더 이상 지속할 필요도 없게 되었다. 정부와 민간이 합동으로 전향적인 통
북한에게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준다. 남한의 경우 징병제를 모병제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고, 군대에 가야 했던 인력을 사회 다른 곳에서 더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국방비로 쓰이던 예산을 다른 산업과 학문, 국민복지에 투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반도는 세계 유일의 분단 지역이다. 21
북한 변수의 활용은 여전했다.
1983년의 아웅산 테러사건, KAL기 피격 사건 등으로 조장된 안보 위기의식은 재야인사와 학생 세력의 광주 사태에 대한 저항을 무력화하는데 이용되었다. 또한 1986년에 발발한 ‘금강산 댐’ 관련 사태에서도 정부는 현실을 과장하여 국민의 불안감을 조성하여 정권에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