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思悼世子)의 빈으로 간택되고, 10세에 가례를 올리고 입궐한다. 혜경궁 홍씨는 영조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1752년(영조 27) 아들 정조를 낳아 지위를 튼튼히 했다. 또한 아버지 홍봉한은 과거에 급제하여 고속승진을 계속해 나가는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점차 세자의 정신질환이 악화
2. 역사적 사실에 대한 구체성 실현
2-2. 수필 「한중록」
20일 신시 쯤 폭우가 내리고 뇌성도 하니 뇌성을 두려워하시던 일이나 어찌 되신고 하는 생각 차마 형용할 수 없었다. 음식을 끊고 굶어 죽고 싶고, 깊은 물에라도 빠지고 싶고, 수건을 어루만지며 칼도 자주 들었으나 마음이 약하여 강한 결단
2) 왜 탕평정치를 추구했나
...협소한 우리 나라에서 어떻게 색목으로서 사람을 버리겠는가?... 정조 2권, 즉위년(1776 병신 / 청 건륭(乾隆) 41년) 9월 22일(경인) 1번째기사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여 마치 스스로 충신, 역적의 의리의 사이에서 보존하지 못할까봐 당초부터 감히 쉽사리 말하지 않
Ⅰ. 들어가며
1. 연구방법
『한중록』은 총 4편으로 쓰여진 시기나 목적도 다르다. 그러나 한중록은 사도세자의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진 이야기가 축이 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은이 자신의 홍씨 가문의 화에 대한 해명서의 성격이 짙은1편과 달리 4편은 사도세자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임오 화
사도세자는 영조의 둘째 아들로 조숙하고 총명한데다 영조의 총애를 독차지하여 언행에 거리낌이 없었다. 게다가 호기심이 많아 지난날의 정쟁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기존 질서에 거부감을 지니고 있었다. 탕평책에 따라 다시 정계에 발을 들여놓은 남인과 노론 명분 속에 미약한 권력을 유지하여 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