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귀족출신의 이찬 칠숙,아찬 석품의 모반과 실패
53년(631) 여름 5월에 이찬 칠숙이 아찬 석품과 반란을 꾀하였다. 왕이 이를 알아
차리고 칠숙을 잡아 그를 동쪽 시장에서 목베고 구족(九族)까지 멸했다. 아찬 석품은
도망하여 백제의 국경에까지 이르렀다가 아내와 자식들을 만나보고자 하여, 낮에
14조. 삼국 말기의 정치과정
■ 고대국가의 대내적 모순 - 국가완성기에 대왕집권체제의 확립에 따른 변동
ⅰ. 대왕과 민民의 관계 : 피정복지(지방)까지는 왕의 권력이 미치지 않던 이전과 달리 이 시기에는 피정복지의 민도 왕의 지배를 받는 민으로 파악됨으로써 수취 대상으로서의 의미를 지
Ⅰ. 개요
주자 계열 성리학만을 국시 국학으로 숭장해온 조선왕국의 지배이념에서는 주자의 통치론을 따라 이른바 재상 위임의 통치체제를 지향하게 되었다.
인주는 재상(으로 합당한 자를) 논하는 것을 직무로 삼으며 宰相은 임금 바로잡는 일을 직무로 삼는다. 양자가 각기 그 직무를 제대로 지
2. 대 왜 외교
고구려와의 연합구축에 실패한 김춘추는 계속적인 백제의 침략을 방어하기위해 당에게 원군을 요청하게 된다. 그러나 이에 당 태종은 불확실한 답변을 주었고 당의 고구려 침략에 원군을 보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려 하였으나 그 사이에 오히려 백제에게 당항성을 비롯한 7개의 성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