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사마광과 자치통감
(1) 구법과 신법의 대립
위에서 설명한 송 대 사회의 재정적자로 인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신종은 사회의 개혁을 통해 대내적으로는 국가의 재정을 확충하고, 대외적으로는 다른 민족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한 군사력 확충을 도모 하려한다. 그리하여 급진개혁파의 선두주자인
[1] 사마광의 자치통감
1 - 1. 편년체의 정의
편년체 : 연월(年月)에 따라 기술하는 역사편찬의 한 체재(體裁).
중국의 《좌전(左傳)》이 편년체의 형태가 나타나고 있는데, 기전체형식(紀傳體形式)에 대하여 의도적으로 이러한 기술방식을 처음 사용하게 된 것은 후한 대(後漢代)의 순열(荀悅: 148 ~ 209
1. 사마광의 사상과 생애
사마광은 자는 군실 호는 우부이며, 시호는 문정(文正)에 산시성 출생이다. 속수선생이라고도 하며, 죽은 뒤 온국공에 봉해졌으므로 사마온공이라고도 한다. 20세에 진사가 되고, 1067년 신종이 즉위한 해에 한림학사, 이어서 어사중승이 되어 출세가도를 달렸다. 그러나 신종
사마광의 자치통감에 등장하는 조조에 대한 기록을 통해 과연 역사적인 한 인물에 대한 시각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 재조명에서 조조에 관한 선입관에서 벗어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고자 했다면, 두 번째 재조명에서는 보다 ‘현대적’인 재조명에 의의를 두고자
사회적 배경
1)송(宋)의 개관
중국 역사상 당(唐)·오대십국(五代十國)에 이어지는 왕조(960∼1277)를 宋이라한다. 처음 개봉(開封)에 도읍하였으나 1126년 정강(靖康)의 변(變)으로 강남(江南)으로 옮겨 임안(臨安:杭州)에 천도하였다. 개봉시대를 북송(北宋), 임안시대를 남송(南宋)이라 한다.
오대(五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