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으로 이주, 정착하여 이루어졌다는 주장보다는 선주토착집단의 점진적인 발전 결과로 삼한이 대두하였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리고 고고학적 자료를 근거로 할 때 한강유역을 경계로 남부지역이 특색있는 문화를 형성하기 시작한 때는 청동기시대이며, 이들이 <한족(韓族)>으로 불리게 된 것은
삼한사회의 종교의례」『삼한의 사회와 문화』신서원, 1995, pp55~56.
본고는 동이족 전반에 깔려있던 신앙기반을 바탕으로 삼한소도의 성격에 대한 제설들을 살펴봄으로서 그들 문화의 한부분에 다가가려 한다.
2. 본론
(1) 동이족의 신앙기반
삼국지 위지 동이전을 보면 동북지역․예맥․
삼한단계에 속하는 주거지들은 청동기 시대와 다르게 규모면에서 작아진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것은 삼한의 소국들이 개별 세대단위로 취사를 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삼국지의 내용 중 ‘온 세대가 함께 거처하며 어른과 어린이, 남자와 여자의 구분이 없었다.’는 표현에서 하나의 세대는 단혼
읍락들이 小國(소국)의 국명으로 대변되고 있다는 것은 國邑(국읍)의 정치적 통합기능이 형성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각처에 산재한 이러한 소국들은 철기문화의 보급의 확대와 생산력의 증대에 따라 마한 연맹체내에서도 일정지역의 소국들이 경제적 교환이나 적대적인 세력에 대한 공
소외되고 잊혀 진 나라가 되었다.
이렇게 우리나라 고대사에 관한 전통적인 이해가 삼국사기 이래로 삼국을 중심으로 이어져 온데다 변한지역의 가야세력이 4세기 이후 이 지역에서 삼국에 견줄만한 중앙집권적 고대국가로 성장하지 못하면서 가야사는 신라에 병합되었고 그 역사도 자연스럽게 신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