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과 사회주의
외국자본에 의존하면서 발전해 온 러시아 자본주의에 있어서, 전쟁은 이러한 제모순을 극점에 까지 높이는 작용을 담당하였다. 주요 교역로의 절단으로 동맹국으로부터 사실상 격리되고, 또 한 국내의 기계공업과 수송부문이 특히 취약했던 탓으로 전쟁발발 후 2년 만에 러시아의
생산이나 자본주의적 투자의 집적으로 인한 문제점도 그다지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던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레닌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제국주의를 마르크스가 예견하지 못했던 자본주의적 특이 현상으로 지적했다. 자본주의가 유럽 내에서 최고로 팽창하여 여러 가지 모순점
사회주의자들이 도덕적 감정을 근거로 삼았던 것과는 달리, 경제학을 통하여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필연적 붕괴 위에 건설하려 하였다. 그러므로 마르크스는 노동가치설을 설명원리로 삼고 잉여가치론(剩餘價値論)을 분석장치로 삼아 자본주의의 경제적 운동법칙을 밝힘으로써 그 필연적 멸망을 증
생산노동을 동시에 수행하던 가내생산적 대가족제도가 소가족제도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사회적 노동에서 축출, 가정으로 밀폐되었던 중산층 여성의 반발이 그것이다. 그러나 더욱 본질적인 요인은 계급구조의 변화이다. 시민계급의 급속한 성장과 더불어 개인의 능력이 강조되었고 상업, 산업, 행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