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뿐, 현실에서는 두 가지 총계 일치의 명제가 성립할 수 없다.
3단계 쟁점 : 신리카도학파는 마르크스의 가치 이론이 비정합적이고 불필요하기 때문에 굳이 가치 이론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
이 주장에 대해 거스타인, 파인, 해리스는 마르크스의 가치이론을 옹호하기 위한 시도를 함
논쟁을 처음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원래 동아시아의 경제적, 정치적 성공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동아시아 발전 모델론과 아시아적 가치론은 이제 오히려 ‘동아시아 경제의 좌절’. ‘정실 자본우의의 몰락’을 설명하기 위하여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비효율적이고
론을 주장한 맬더스와는 서로 논쟁을 주고 받는 친구 관계였다고 한다. 그의 이론은 존 스튜어트 밀, 카를 마르크스 등 여러 사상가에게 영향을 끼쳤다.
특히 그가 애덤 스미스로부터 이어받아 발전시킨 노동가치설은 이후 마르크스에게 잉여가치론으로 비판·계승된다. 그는 1772년 영국 런던에서 출
론 완성시켰다. 경제학에 학문적 체계를 제시하였으며, 노동가치설과 비교우위론, 차액지대론 등을 주장하여 후대의 경제학 발전에 단초를 제공하였다.
그는 1772년 영국 런던에서 출생했다. 증권업자였던 유태계 독일인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증권업에 재능과 관심을 보였다. 14세부터
서양의 프로테스탄티즘 윤리가 자본주의 태생과 발전을 가능하게 했으며, 유교와 불교 등의 전통적 요소가 동양의 자본주의 태생과 발전을 지체 시켰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러한 막스 베버의 논리에 영향을 받은 아시아의 국가들은 서구에 비해 더딘 경제성장과 근대화의 책임을 유교의 탓으로 돌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