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주기철 목사와 배형규 목사의 활동
1) 신사참배 반대운동과 주기철 목사의 활동
(1)신사불참배 운동과 주기철 목사
본격적인 항거운동은 1938년 초 전국노회에 신사참배가 강요된 때부터 일어났다. 2월9일 교세가 가장 강하고 한국 교회의 지도인물들이 다수 있는 평북노회가 가장 먼저 신사참배를
3) 해방 후
1946년 10월 13일(둘째 주일)에 영락교회에서 한경직목사의 배려로 "베다니" 3층 예배실『농아전도부』에서 7명이 모여 박윤삼전도사의 지도로 첫 예배를 드렸으며 1950년 1월 1일에 (한경직목사의 집전) 처음으로 농아신도 7명이 세례 받았다. 6.25 사변으로 각처에 흩어져 2년간 집회를 하지 못
2급: 두 귀의 청력손실이 각각 90dB 이상
3급: 두 귀의 청력손실이 각각 80dB 이상
4급 1호: 두 귀의 청력손실이 각각 70dB 이상
4급 2호: 두 귀에 들리는 보통 말소리의 최대 명료도가 50% 이하인 사람
5급: 두 귀의 청력손실이 각각 60dB 이상인 사람. 심한 이명이 있으며 청력장애 정도가 6급인 경우 5급으
교회성장의 대명제로 세워진 성장 형태로 만들어진 목회 구조가 지금까지 교회를 구조화하였다. 그러나 미래 목회자들은, 미래 사회의 구조적 변화는 현재의 목회 구조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에 먼저 눈을 떠야 한다고 한다. 교회는 이러한 사회의 변화에 대하여 대처해야 하는 새로운 선교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