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는 단어들에까지도 미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초대교회 교인들이 성경의 신적 권위와 성경 계시에 사용된 바로 그 단어들이 하나님의 감독을 받은 것임을 믿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인정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교부들이 그러한 계시가 무오한 것으로 이해했는지를 고려해 보아야 한다.
성경의 신적 기원이나 무오를 의심하지 않았지만 성경 기록의 인간적인 요소를 인정했다.
초대교회가 성육신하신 구세주와 거룩한 성경에서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엄청난 겸손의 정통성을 인정했다는 것은 인정되어야 한다. 살아있는 말씀의 적응이 어떤 고유한 의미에서 죄의 오염을 포함하지 않은
성경은 참되고 무오하다.
초대교회는 단지 영감에 대해 자세한 혹은 일관성 있는 이론을 발전 시키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경을 완전히 방어하기 위한 교회의 시도이다. 영감의 인간적인 요소를 부인하지 않았다. 교부들의 영감의 교리에 대한 설명은 질서정연하다. 초기 교부
교리는 뜨겁게 토론되었다. 어떤 이는 성경불오의 가르침은 최근의 현상인 동시에 주로 오리겐의 저서들에 나오는 3세기의 알렉산드리아 전통과 연관된 형태로 생겨난 교회의 역사적 입장에서 벗어난다는 연구된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정말로 초대교회는 성경의 권위만 주장하고 성경의 무오
신앙을 체험한 결과라고 하는 유리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길뿐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신학 사상적으로 루터의 어거스틴에 대한 의존도는 매우 컸다. 초년 시절에, 루터는 자신의 견해를 어거스틴의 일치시켜 칭의에 관한 스콜라철학적 견해에 반대하면서 죄와 은혜의 어거스틴의 입장을 고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