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으려 한다.
(3) 시간의 문제
어거스틴 이전에는 시간은 운동(공간에서의)이다. 어거스틴 이후에는 시간의 문제의 해답을 인간문제의 내면에서 찾는다. 예를 들면, 미래는 소망에서 과거는 기억에서 포착한다.
(4) 삼위일체도 인간 내면에서 찾는다. 사랑하는 자 - 사랑받는 자 - 사랑
3. 신중심
성 모니카이다. 라틴어 문법과 「말 잘하는 기술」에 뛰어났던 어거스틴은 열 여섯의 나이에 북아프리카의 수도 카르타고로 유학을 갔다(370년). 그곳에서 한 여인과 동거에 들어간 아우구스티누스는 얼마 있지 않아 아들 아데오다투스를 얻었다(370/1년경). 떳떳하지 않은 동거 생활은 14년 동안이나 계
어거스틴은 374년부터 10년간 카르타고에서 수사학 학교를 운영하다가 로마에 왔다. 로마에서의 수사학 학교는 별로 운영이 되지 않아서 밀라노의 공립학교에서 수사학을 가르쳤다. 마니교에서는 인간사고의 확실성 근거나 선악이 충돌하는 이유를 밝혀주지 못하였으므로 회의를 느끼던 차에 암부로시
사물이 그것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므로 그는 또한 신을 순수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나는 나다"(출애 3,14)라는 신명에서 신의 본래적 이름을 보았고 이로써 신을 `존재 자체`로 표시하는 중세적 전통을 확립했다.
Ⅱ. 아우구스티누스(성어거스틴)의 이력
아우구스티누스는 마다우라(Madaura)와 카르타고(Karthago)에서 공부했으나 그의 훌륭한 재질과 사려깊은 그의 어머니의 경건한 교육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의 방탕한 청년들의 생활방식과 마니교의 오류에도 빠졌는데 그는 9년이나 이교를 지탱하고 포고하려고 노력했으나 성공적이 아니었다. 철학적인 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