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산리)에 위치한 송산리고분군은 무령왕릉을 포함하여 9기가 조사되었으며, 13기 이상의 고분이 분포되어 있었다.
해발 높이 130m의 송산(宋山)을 북쪽의 주산으로 한 구릉의 중턱 남사면에 분포되어 있으며, 계곡을 사이에 두고 서쪽에는 무령왕릉과 5,6호분이 있고 동북쪽에는 1~4호분이 있다. 1~5호분
3) 계룡산 종교들
해방 이전까지만 해도 계룡산 신흥종교의 계보가 대개 동학과 정역에서 전승되었고, 거기에 도참풍수적 신앙이 강력하게 융합되어 형성되었다. 그런데 해방 후 고유사상에 의한 신흥종교만이 아니라 기독교적 신흥종교들도 기독교의 한국화 또는 토착화의 일환으로 발생하게 되었
Ⅰ. 고구려시대의 회화 미술
압록강변, 대동강변/백제, 신라, 가야와 달리 벽화가 있다. 동아시아 최고의 회화이다. 고구려는 삼국 중에서 가장 일찍 한대와 육조시대 회화를 받아들여 자체 발전의 토대로 삼았다. 중국 회화의 영향을 수용하면서도 고구려는 어느 나라의 회화보다도 힘차고 율동적인
Ⅰ.서설
1971년에 발굴된 무령왕릉은 백제 제 25대 무령왕과 왕비의 무덤으로서 발견당시 전혀 도굴되지 않고 매장당시의 모습 그대로 발견되었다. 지금까지 발견된 삼국시대의 무덤 중 유일하게 그 주인을 알 수 있는 무덤으로서 이의 발굴은 당시의 국사학에서 뿐만아니라 세계사적으로도 크나큰 의
서설
1971년 봄. 아주 우연한 계기로 건국이래 최대의 유적 발굴이 시작되었다.
하룻밤 사이에 끝난 그 발굴은 당시 엄청난 기자와 사람들이 모여들어 모두들 제정신이 아닌 가운데서 이루어 졌다고 한다. 더욱이 한 기자의 실수에 의해 유물중 하나인 청동숟가락이 부러지면서 유적을 보호하려는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