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 그러나 봉건주의가 붕괴되면서, 절대왕정시기(15C- 17C)에는 종래의 구빈제도 와해
② 면직물 공업을 위한 양모공급을 위해 종획 운동(enclosure movement)이 시작되면서 농민이 토지에서 쫓겨남. 수도원에서 구제받던 빈민도 구제받지 못함
③ 노동력이 있는 빈민, 노동력이 없는 빈민이 대량 발생하
수도원이 해산되어 수도원 자선사업을 통한 구제가 없어져 노동력없는 빈민이 대량으로 발생하여 사회문제화 되었다. 이와 같은 빈민이 대량으로 발생하자 빈민을 구제하기위해 정부의 개입이 불가피하게 되었고 빈민에 대한 대책이 수립되기 시작하였다.
●노동자법(The Statute of Laborers) : 에드워드
수입이 가족부양의 정도에 못 미침
=> 영주에게 소속이었던 농노, 수공업자 및 소농민이 자본가의 임금에 고용되어가는 과정
- 자본주의 분배상의 문제와 시민사회의 가족 부양책임에 대해 법이 요구/필요
- 도시화, 기계화, 대량화 발생으로 노동자의 생존을 위협하는 사회적 위험이 발생
수도원 해체에 따른 비보호 계층의 방황, 그리고 중세에 융성했던 상공업자의 동업조합의 붕괴 등도 빈민의 증가를 초래했다. 이상과 같은 상황에서 영국에서는 공적구호가 시급하였고 그 구체적인 출현이 빈민법이다. 빈민법은 여러 번 변천과정을 겪는다.
엘리자베스 빈민법은 구제를 국가의 책임
수도원에 머물던 부랑자들이 내몰리게 되었고 부랑자를 엄벌에 처함으로써 탄압하더라도 귀농 시킬 장소가 없어져 부랑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급증한 부랑자문제와 사회혼란 경제 무질서 등으로 빈민구제사업과 교회자선사업을 국가의 책임으로 받아들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빈법을 제정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