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동 보통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다.
아무도 돌보지 않은 장군의 아들은 청계천의 수표교 밑에서 자랐다. 청계천은 옛 서울의 남쪽과 북쪽을 나누는 경계였으며 그 위에는 여러 개의 다리가 있었다. 수표교(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8호, 현 장충단공원으로 이전)는 청계천 상류에 위치한 다리로 지금
교동(현재 종로구 경운동)에 거주하였다. 이는 조광조와 학문적·인간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은 김식의 후손들이 김육대부터 회현방(會賢坊) 지금의 중구 일대로, 현재 행정구역으로는 태평로 2가 , 소공동, 명동, 북창동, 남대문로, 수표동, 회현동, 충무로, 을지로 일대가 각 일원에 해당한다.
일대로
교동국민학교를 마치고 협객으로 활동하면서 주먹왕으로 군림하였다. 일제 강점기 말에는 주먹의 힘으로 민족적·의협적인 행동을 하였다. 광복 후 한독당(韓獨黨) 재정위원·대한민주청년연맹 부위원장·대한노조총연합회 최고위원 등을 지냈고, 반탁운동과 노동운동에 종사하였다. 1954년 3대 민의원
일제는 1905년 을사조약 후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했으며, 1907년 고종을 퇴위시키고, 한일신협약을 체결하는 등 사법권, 관리 임명권, 한국 군대 해체 등의 권한을 독식하면서 식민 통치를 감행했다. 이때 해산된 군인들의 가담으로 일어난 의병항쟁은 일본군의 저항으로 실패하였으나, 1908년 재미 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