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우리 문학사에서 시조(時調)는 조선조의 대표적인 시가이자, 사대부의 시가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시조의 정의를 이태극은 “보통 시조라면 단시조(평시조)를 말하는데, 그 단시조라는 것은 신라의 향가나 고려의 별곡 등의 영향에 힘입어 고려 중‧ 말엽경에 그 형태가
강화의 지향을 보여준 건국송가자고, 유교문화의 화립과 발전을 반영한 도학시가 가사조, 도교사상의 영향을 반영하고 이 시기 사외당쟁현실의 결과로서의 <강호시가>, <은일시가>사조, 북방개척과 국토방위의 주제를 보여준 애국적 시가창작, 여류시인의 배출과 여류문학의 진출 등이 곧 그러하다.
강호한정 등의 내용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15세기 마부터는 유학자들의 시조와 내용상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이는 기녀시조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폐쇄적인 조선 사회에서 여성 문학 활동은 억제되었으며 교육의 기회 제공도 거의 없었다. 이와 같은 설정 속에서 시조 문학은 사대부들의 전유물
고려가요다. 서경별곡과도 많이 엮인다. 시용향악보에 게재돼 있다.
조선 초기 사대부시조중는 맹사성(孟思誠, 1360~1438)의 강호사시가는 조선 초기, 맹사성(孟思誠)이 지은 4수로 된 연시조. 만년에 벼슬을 내놓고 강호에 묻힌 자신의 생활을 춘·하·추·동 사철의 자연의 변화와 결부시켜 각 한 수씩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