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기(식민지시대, 일제강점기)의 목재수급
1. 용재의 생산량 추이
용재 생산량의 추이와 특성을 ①제1기(1910년~1925년), ②제2기(1926년~1928년), ③제3기(1929년~1931년), ④제4기(1932년~1945년)로 나누어 정리했다. 식민지기 총 용재 생산량은 약 6,533만㎥로, 입목으로는 약 1억8백만㎥에 해당한다. 같은
Ⅰ. 식민지기(식민지시대, 일제강점기)의 영양상태
1인당 식료품비(실질액)는 총 32% 증가했다. 그중 곡물류 소비액은 절대적으로 감소한 반면, 그 밖의 식료비가 늘었다.
이 1인당 곡물 소비의 감소를 부정하는 연구는 없다. 최근 필자의 추계에서도, 단순 합계한 곡물소비량은 20% 가까이 감소했다.
계층별로는 월 3% 이상 고리채의 비중이 소작농 30.8%, 자소낙농 16.8%로 소작농의 고리채 이용률이 높았으며, 특히 남부지방 소작농의 고리채 비중은 46%에 달하였다. 또한 대부자별로는 부채총액의 56%, 부채농가 호수의 61%를 차지하였던 개인 대부의 이율은 평균 35.2% 이었으며, 부채총액의 19.2%와 부채농
수지나 댐 같은 콘크리트 구조물들로 더 많은 수확량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의 도입으로 인해 농민의 삶이 윤택해 졌다고만 할 수도 없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수탈당한 농민에 있다.
이 시기에 조선 농민들에게 보급된 농업기술은 거의 강제적으로 보급 된 것이었다. 일본 기수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