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식민지배(식민지지배)와 반일민족해방운동
우리나라의 반일민족해방운동은 1920년대 들어 커다란 질적 전환을 맞게 된다. 3.1운동이 비폭력주의를 선언하고 출발하였으나 무자비한 탄압을 받게 되자 본격적 무장 투쟁이 아니고는 민족해방이 불가능함을 알게 됨으로써 무장 투쟁이 일어나게
운동을 계기로 평안북도 갑산•함경남도 혜산 일대와 압록강과 두만강을 중심으로 한 국경 지방에서 격렬한 무장투쟁을 벌였다.
일제는 국경 지방의 독립군을 뿌리 뽑지 않고서는 조선을 지배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대규모로 군대를 동원하여 독립군 토벌에 나섰다. 이때 홍범도 부대는 북간도 왕
식민지시대, 일제강점기)의 경제발전
시대별로 토지조사사업(1910년대)과 산미증식계획(1920년대∼30년대 전반), 일본자본을 중심으로 하는 급속한 공업화(1930년대 후반∼1940년대 전반)등이 행해졌다.
일제 식민지지배의 커다란 특징의 하나로서 '토지소유관계의 철저한 개혁'을 들었는데, 이는 농촌
식민지 조선에 전가하여 자국 체제의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다.
1910년대 토지 조사 사업을 통한 토지 수탈, 20년대 산미 증식 운동으로 인한 쌀 수탈과 소작료 인상, 1930년대 일본 제국주의 전쟁을 위해 조선을 자국의 병참 기지로 만들기 위한 민족 말살 정책이 그것이다. 그 결과 조선 민족에 주어지는
무단통치시대, 즉 식민지 통치형성과 수난기로 나눈다.
셋째로 1919년부터 1931년까지를 문화통치시대, 즉 일제의 회유조정과 독립운동기이다.
넷째로 1931년부터 1937년까지를 병참기지화 및 항일 민족운동기로 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1937년부터 1945년까지 전시동원 및 항일 민족운동기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