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고구려(소수림왕2년;372), 백제(침류왕1년;384)가 왕실에 의해 불교를 수용했던 것과 같이 신라의 불교 또한 수용의 주체에 있어서는 왕실이었다.
신라의 불교 공인은 고구려나 백제에 비해 150년 가량 늦은 법흥왕(528년)때 이루어진다. 하지만 여러 자료를 통해 이미 그 이전부터 (고구려에 불교
신라불교의 특징
신라불교의 특징은 호국불교사상, 미륵사상, 불국토사상 이 세 가지로 요약된다. 신라 시대 불교의 가장 특징적인 성격은 호국적인 성격을 지녔다는 것이다. 신라에서는 백좌강회나 팔관회와 같은 호국법회를 자주 열었으며 특히 황룡사 9층탑은 9개국을 정복하여 그 조공을 받을
불교
1. 신라불교의 타락
8세기후반 신라하대에 접어들면서 불교는 귀족적 승관제 및 각종 호국기도법회 등에 의해 왕실 권력과 더욱 밀착되었다.(참고) 특히 대규모의 사찰, 탑(석가탑과 다보탑), 불상(분황사 약사여래불상), 종(성덕대왕신종, 황룡사 종)을 지어 호사한 왕실의 권위를 드러내 보이
신라는 국내에서 경쟁 없이 평화를 구가하며 당시 세계문명의 중심지였던 당과 빈번한 교류를 하여 당에 못지않은 문화의 꽃을 피웠다. 본격적인 한학의 수용을 보았고 불교는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하여 고승들의 국제적 활약도 있었다. 불교의 발전은 불교미술의 발전을 초래하여 불상조각 탑파와 사
Ⅰ. 신라시대(신라)의 유학
삼국 중 가장 발전이 늦은 신라도 불교를 국가 이념으로 채택하여 가장 불교적인 성격이 강한 국가를 이루었으나, 통일을 전후한 무렵에 오면 유교적인 정치 이념과 제도의 필요성이 더욱 증대되었다. 신라가 팽창하여 넓은 영토와 많은 주민을 통치하기 위해서는 불교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