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당시에는 ‘월지(月池)’였음이 밝혀졌으며 본고에서는 이후 월지(月池)라 한며, 그 명칭에 관하여는 3장의 1.名稱에서 논하고 있다.
, 이후 월지의 조경수법을 밝히는 논문 박경자, 『統一新羅時代 雁鴨池의 造景樣式에 關한 硏究』, 서울大環境大 碩論, 1979.
이 발표되었으나, 건물지(建物址)와
신라의 월성 등이 그러하다. 토성을 축조하는 방법으로는 삭토법(削土法) 산의 성벽이 통과할 지역의 내부를 파서 성벽으로 축조하는 방법.
․판축법(版築法) 진흙과 모래 등을 차례차례 다져 넣어가며 쌓아올리는 방법.
․성토법(成土法) 다른 지역에서 흙을 가져다 성벽을 쌓는 방법.
․보
제 1장 통일신라 시대개관 및 도성계획
1. 시대개관
․ 불교
․ 당문화 영향
․ 독자적 발전
2. 도성계획
․ 경주 고허촌(高墟村)
․ 금성(金城) ― 평지에 토축(土築)의 도성(都城)
․ 월성(月城) ― 돌과 흙
월성과 금성 사이로 도시 발전
․ 산성 ― 남산성(南山
월성과 인접해 있고 동쪽으로는 황룡사가 가까이 있는 도성 경주의 거의 한복판되는곳이다. 안압지는 인공미와 자연미가 조화를 이루고 여기에 중국의 문학취미가 반영된 신라 조원술이 최고봉을 자랑하는 유적으로 평가된다 당시 귀족들이 이곳에서 통일 왕국의 한가롭고 여유있는 생활을 즐겻음을
신라의 도성은 거주지역을 성벽으로 둘러싼 형태가 아니라 사방으로 개방되어 있었다. 이에 연합군이 성들을 손쉽게 점령할 수 있었다.
내물 마립간은 월성에 들어가 겨우 목숨만 부지하고 있었다. 금성을 장악한 후, 연합군은 치명적인 실수를 하게 되는데, 그것은 연합군이 금성만 장악하였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