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 이전의 유교
내물왕 26년(381)
前晋王 : 言海東之事 與古不同 何耶
전진왕 : “해동의 사정이 옛날과 다름은 어찌된 일인가?”
- 삼국사기, 전진의 황제 부견(符堅) 신라 사신 위두(衛頭)의 대화 -
한자를 통한 외교관계가 내물왕 이전부터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며,
이를 통해 한학
Ⅱ.본론
1. 삼국유사 속에 등장하는 유교와 관련된 인물
1) 물계자는 제 10대 남해왕 17년에 태자와 함께 변방을 지킨 인물이다. 삼국유사 p 565~567
남해왕 17년은 212년의 해이다. 이때부터 이미 충의 개념이 통용되었으며 사군자적인 절개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원문을 보면 직접적으로 유교의 개
유교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뒷받침되어야 언급할 수 있는 대목이다.
3) 원효대사의 아들인 설총은 신라 10현이라 일컫지는 사람들 중 하나였으며 신라유교의 이론적 토대를 설립하였다. 설총은 스스로 복성거사라 불렀다. 그는 경서와 역사서를 통달하였으며 방음으로 중국과 신라의 풍속과 물건 이
유교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유교의 영향력을 시대가 지날수록 점점 넓어졌으며, 이윽고 조선왕조의 사상적 기반을 이루게 된다. 이처럼 점차적으로 발전한 유교가 삼국시대에는 어떠한 형태로 나타났는지, 자료가 풍부한 신라를 중점에 두고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유교개념 중에서 효를 집중
1. 인물로 보는 유교의 사상적 흐름
1) 유교에 관련된 내용 중에서 제일 이른 시기의 기록은 물계자편 이였다. 물계자는 제 10대 남해왕 17년(212년)에 태자와 함께 변방을 지킨 인물이다. 일연, 김원중 옮김, 삼국유사 2002 을유 문화사. p. 565~567
이하는 동일한 책은 삼국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