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유교
1. 인물로 보는 유교의 사상적 흐름
1) 유교에 관련된 내용 중에서 제일 이른 시기의 기록은 물계자편 이였다. 물계자는 제 10대 남해왕 17년(212년)에 태자와 함께 변방을 지킨 인물이다. 일연, 김원중 옮김, 삼국유사 2002 을유 문화사. p. 565~567
이하는 동일
만난 것을 한탄하면서 해인사에 은둔생활을 하였다. 최치원은 유교적 입장의 선비였으나 다른 분야에 개방적인 지식인 이였다. 일연이 의상법사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그 나머지 내용은 최치원이 지은 본전과 같다 하였으니 삼국유사 p. 467
의상에 관한 글을 남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 인물로 보는 유교의 사상적 흐름
1) 유교에 관련된 내용 중에서 제일 이른 시기의 기록은 물계자편 이였다. 물계자는 제 10대 남해왕 17년(212년)에 태자와 함께 변방을 지킨 인물이다. 일연, 김원중 옮김, 삼국유사 2002 을유 문화사. p. 565~567
이하는 동일한 책은 삼국유사
삼국유사》의 저술은 저자가 사관이 아닌 일개 승려의 신분이었고, 그의 활동 범위가 주로 영남지방 일원이었다는 제약 때문에 불교 중심 또는 신라 중심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북방계통의 기사가 소홀해졌으며, 간혹 인용 전적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을 뿐더러, 잘못 전해지는 사적을 그대로 모
불교의 효를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출가나 머리를 깎는 행위 등은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의 유교적 입장에서는 용인될 수 없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교에서도 엄연히 효는 존재했다. 다만 실천 방식과 효의 의미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유교에서의 효가 부모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