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신라향가서동요의 배경설화
제 30대 무왕의 이름은 장이다. 어머니가 홀로 되어 집을 서울 남쪽 못가에 짓고 살았는데 못에 있는 용과 교통하여 그를 낳았다. 어릴 때 이름은 서동이며, 도량이 한없이 넓었다. 항상 마를 캐고 팔아서 생업으로 삼았으므로 사람들이 그런 이름을 지은 것이다. 신라
서동은 용자(龍子)로 태어나서 고난을 극복하고, 왕위에 오른다는 영웅 설화의 공식적인 과정을 밟는다. 영웅의 일생은 결혼에 의해 성공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이 `서동요`는 이러한 성공의 기능을 제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서동이 앙숙인 신라의 선화 공주를 연모하여 감자 캐
Ⅰ. 신라향가 - 서동요의 배경설화
백재 제30대 무왕(武王)의 이름은 장(璋)이다. 그의 어머니가 과부로, 백제의 서울 남쪽에 있는 연못가에 살고 있었는데, 그 못 속의 용과 관계하여 아들을 낳았다. 이 아이가 뒷날 무왕이다. 워낙 위인이 그릇이 크고 도량이 넓어 장차 큰 인물이 될 바탕을 갖추고 있
서동요의 작품이해
서동요(薯童謠)
신라 진평왕 때 백제 무왕(武王)이 지은 4구체 형식의 향가이다. 향찰(鄕札)로 표기된 민요적 성격을 띠고 있다. 이 노래는 무왕조에 수록되어 있는 서동설화(薯童說話)에 끼어 전한다. 이 설화에 의하면 이 노래는 백제 무왕이 소년 시절에 서동으로서 신라 서울에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양지는 가문을 알 수 없는 신분이고, 지팡이와 자루를 보내 동냥을 했다고 하듯이 일반 백성 단골들에 의지해서 살아가며 스스로 장인 노릇을 했다. 풍요라는 명칭은 민요라는 의미이지 개별 작품의 명칭은 아니다. 노동요로서 불교적인 내용과 서민들의 애환을 두루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