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채호(이하 단재)의 역사학은, 역사관․역사연구 방법론에서 이미 근대 사학의 수준에 도달하였고, 사학 정신이나 그 지향점 또한 근대 민족주의 사학의 결실이었고, 단재에 이르러서 근대 민족주의 사학이 성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그의 역사관은 한국사 인식체계와 역사 무대의 확대라는
신채호가 성균관에 재학하면서 학문을 닦던 시기는, 역사적으로 외세의 침략이 격화되고, 이에 대응한 민족의 저항이 치열하게 타오르던 시기였다. 당시의 민족운동은 무장투쟁인 義兵運動과 국권수호를 위한 정치적 투쟁인 愛國啓蒙運動으로 크게 표면화되었다. 이 운동은 모두 외세의 침략과 利權
신채호 선생이다. 사학자와 언론인들로부터 가장 존경 받는 분이시지만 일반 대중들로부터는 외국의 아나키스트 크로포트킨이나 체 게바라 보다 훨씬 어필하지 못하고 있고, 그 분에 관한 논문과 책들은 많으나 서점의 앞 진열대는 외국의 유명 인사들의 자서전과 평전으로 즐비하다. 또한 저자도 책
사상을 통해서 그 답을 풀어 나가고 싶었다. 따라서 신채호의 사상을 되짚어 보면서 조선말과 식민지 시기, 조선인의 고민을 공유해 보고 더 나아가 ‘그의 사상이 어떻게 현실 속에 나타났는지‘에 대해서 알아봄으로써 그 당시의 상황을 그는 ‘어떻게 극복하려고 했는지‘도 알아보고자 한다.
신채호의 생애
일반 역사를 연구하거나 인물사를 연구함에 한 사건 혹은 인물의 시대적 ․ 족적 배경을 연구하는 것은 거의 필수적이다. 특히 지성사 연구에는 이 점이 거의 불가결의 요소처럼 되어 있다. 이만열,「단재사학의 배경」,『한국 근현대 역사학의 흐름』, 푸른역사, 2007
여기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