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채호(이하 단재)의 역사학은, 역사관․역사연구 방법론에서 이미 근대 사학의 수준에 도달하였고, 사학 정신이나 그 지향점 또한 근대 민족주의 사학의 결실이었고, 단재에 이르러서 근대 민족주의 사학이 성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그의 역사관은 한국사 인식체계와 역사 무대의 확대라는
단재신채호는 한국근대사에 외세의 침투가 가중되던 1880년 12월 8일 충남 대덕군 산내면 어남리(도리미)에서 아버지 신광식(申光植:1849-1886)과 어머니 밀양 박씨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高靈으로 신숙주의 후손인데, 할아버지 신성우는 일찍이 문과에 합격하여 正言까지 지낸 바 있으나
신채호 선생이다. 사학자와 언론인들로부터 가장 존경 받는 분이시지만 일반 대중들로부터는 외국의 아나키스트 크로포트킨이나 체 게바라 보다 훨씬 어필하지 못하고 있고, 그 분에 관한 논문과 책들은 많으나 서점의 앞 진열대는 외국의 유명 인사들의 자서전과 평전으로 즐비하다. 또한 저자도 책
사상을 통해서 그 답을 풀어 나가고 싶었다. 따라서 신채호의 사상을 되짚어 보면서 조선말과 식민지 시기, 조선인의 고민을 공유해 보고 더 나아가 ‘그의 사상이 어떻게 현실 속에 나타났는지‘에 대해서 알아봄으로써 그 당시의 상황을 그는 ‘어떻게 극복하려고 했는지‘도 알아보고자 한다.
단재신채호 선생은 충남 대전 출생으로 그의 역사연구에도 심오한 신견을 가지고 있어 고조선(古朝鮮)과 묘청(妙淸)의 난(亂) 등에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고 ‘역사라는 것은 아와 비아의 투쟁이다’라는 명제를 내걸어 민족사관을 수립, 한국 근대사학의 기초를 확립했다. 그의 저서는 《조선상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