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지로 망명하여 근대사학(近代史學)의 길을 열어나간다. 당시의 많은 역사가들은 우리 민족의 이념적 독립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을 했다. 그래서 이번 발제에서는 사학을 근대적인 학문으로 성립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고 평가받는 단재 신채호와 백암 박은식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다.
신채호의 역사관에 대한 연구는 꾸준히 진행된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이호룡의 <신채호, 민족 해방을 꿈꾼 아나키스트>와 같이 민족주의사학자라는 틀에서 벗어나 무정부주의자의 모습도 연구하였고, 배용일의 <박은식과 신채호 사상의 비교연구>와 같이 민족주의사학자 간의 비교연구도 이루어
사학은 조국이 식민지라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자연히 민족의 애국심을 고취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 결과 대체적으로 우리 민족의 자주성을 강조하게 되었고, 우리 민족의 뛰어난 문화유산이나 역사적 전쟁 및 우리 역사에 나타난 영웅(英雄)들을 많이 다루게 되었다.
단재 신채호의 생
민족주의에 대한 정의를 먼저 내려보면 ꡒ인종, 언어, 종교, 혹은 영토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구성원간에 일체감과 연대감을 공유하는 민족 공동체의 집합적 생존과 번영을 추구하는 정치적 이념ꡓ 이라 할 수 있다. Tilly는 이러한 민족주의를 국가 주도의 민족주의와 국가 추구의 민족주의로 분
1. 머리말
1920년대에 민족주의사학자로 분류되는 신채호와 박은식이 해외에서 활약하던 시기에 국내에선 식민사학과 대항하면서 국사 연구를 하던 인물들은 황의돈․안확․권덕규․장도빈 등이 있다. 일제하의 대부분의 역사가들이 그랬듯이, 그들은 민족주의적인 성향을 강하게 지녔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