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과학 기술의 힘으로 폭력의 수단이 날로 발전되어 이제는 인간이 만든 파괴 수단에 의해 인간 스스로가 절멸할 위기에 처해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폭력 그 자체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나아렌트는 20세기를 압도
폭력의 세기』의 탄생
-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폭력 = 권력(불가분의 관계)
마키아벨리, 맑스, 엥겔스, 베버
- 탈 권위주의 사상운동
- 미국과 독일 68운동? 보충
- 20세기를 향한 한나아렌트의 질문과 자답
“폭력의 대립물은 비폭력이 아닌 권력이다”
“갈등은 담화로서 해소되어야
<2>폭력의 본성에서의 중요 단어
1)불의와 위선
오늘날 폭력의 발생 동기는 불의가 아닌 위선이다. 위선은 참여자를 분노자로 전환시킨다. 예)프랑스 시민혁명의 로베스 피에르
폭력자체를 위해서 폭력을 예찬했던 저자 층(소렐, 파레토, 파농)은 많지 않지만 증오라는 강력한 동기를 통해 전통좌
폭력은 권력이 위태로운 곳에서 나타나지만, 그대로 내버려두면 권력의 소멸로 끝이 난다. 그렇다. 폭력은 권력을 파괴할 수 있다. 하지만 폭력은 권력을 생산할 수 없고, 대립물인 권력으로부터 도출될 수도 없다. 그렇다고 폭력과 악이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폭력의 근원과 본성
한나아렌트(Hannah Arendt)는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인권의 사상가 중 한 명이 되었다. 아렌트를 재해석하려는 시도는 아렌트 사후 지속해서 이루어졌고, 20세기 후반에는 이른바 아렌트 르네상스라고 불릴 만큼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Benahabib 2003, ⅸ). 이 연구들은 다양한 주제들, 예컨대 유대인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