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속요는 개인에 의해 편찬된 가요집이 현재 전하는 것이 없고 조선시대에 들어와 음악을 정리하면서 예전의 악보나 가사집을 참고하여 고려사악보를 만들었고, 향찰로 적혀 있었을 노 랫말을 훈민정음으로 옮겨 놓음으로써 오늘날의『악장가사』,『시용학악보』,『악학궤범』에 실린 고려
악학궤범≫에 실린 곡은 없고 ≪악장가사≫에 실린 곡으로는 9곡이 있다. 그 가운데 7곡이 고려시가인데 <사모곡>, <서경별곡>, <정석가>, <청산별곡>, <귀호곡(가시리>>, <풍입송>, <야심사>가 그것이다.
(5) 악장가사(樂章歌詞)
편찬자와 연대는 미상이나, 조선 중종 ․ 명종 연간에 밀양 사람 박준(朴
연주된 宴樂(잔치악)까지를 모두 포괄하는 개념으로 보는 경우이고, 둘째는 궁중에서 연주된 속악의 가사만을 대상으로 보는 경우인데 《고려사악지》에 실린 민요적인 노래를 제외하고 《악학궤범》이나 《악장가사》에 실린 노래와 《시용향악보》의 일부분만을 동일한 장르로 보는 경우이다.
고려시대의 노래가 대체로 민간가요적 성격을 지닌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고려시대의 노래들을 전하는 문헌은 조선 초기의 궁중음악에 관한 기록들이어서 민간가요적 성격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이유로 속요라는 명칭이 부적당함을 지적하고 그 대신에 장가, 별곡, 고속가 등으로 부르기도
경기체가는 향유계층의 이념과 역사적 성격, 표현기법에서 서로 판이한 것이 사실이나, 형식에 있어서 연장의 형태나 후렴구와 감탄사 등 형식에 있어 공통점도 엿보인다. 이러한 형태상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 하여, 고려시대의 시가를 전체적으로 포괄하여 가요나 장가라는 명칭보다는별곡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