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명학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을 것이 분명하다. 이런 이유로 조선의 양명학 수용․발전은 변척(辨斥)과는 분리하여 생각하기 어렵다.
윤근수․유성룡․허봉의 대명사행을 통한 양명학변척을 살핌으로써 16세기 조선 유학의 경향을 파악하고자 한다.
1. 윤근수, 유성룡, 허봉
사림에게 의리정신으로 용해되어 의리와 명분에 바탕을 둔 사림정신으로 계승되었다. 몇 차례에 걸친 사화는 학풍을 크게 변하게 하여 이론과 사색의 방면으로 치우치게 함으로써 고상한 철리연구를 주안으로 삼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이 시기 학문은 붕당정치의 사상적 토대가 되기도 하였다.
순선하다고 여겼으나 주자는 사단에도 불선한 점이 있다고 여겼다. 알지 못하겠도다. 네 분 선생님들은 주자의 이 말을 보지 못했는가. 사단이 어떻게 불선할 수 있는가. 사단도 기발이이승하기 때문이다. 발할때 그 기가 청명하면 이도 순선하지만 그 기가 혼탁하면 이도 그것에 가리워지게 된다.”
명론으로 합리화하려고 했다는 설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2) 유신세력의 불교배척 확립
예종이 즉위후 1년만에 죽고 성종이 즉위하는 동안 유신세력은 간경도감의 혁파를 주장하여 성종 2년 간경도감이 혁파되었다. 성종은 처음에는 대왕대비의 섭정 하에서 왕실불교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
사행 체험이 국문시가의 소재로 활용된 최초의 사례는 <서호별곡>의 작가인 허강(許橿)이 1541(중종 36)년에 아버지 허자(許磁)를 따라 중국을 다녀온 체험을 토대로 창작한 시조 2수이며 그의 문집인 『송호유고(松湖遺稿)』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또한 정철이 1593(선조 26)년에 사은사로 명나라를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