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게만 강조되는 상황에서 자유연애를 실천하던 신여성들은 비난받을 수 밖에 없었다.
1920년대의 대표적인 여성작가인 나혜석, 김명순, 김원주는 “고백”이라는 형식을 선택하여 자신들의 사랑과 신여성으로서의 삶을 글로 표현하였다. ‘신여성들은 무엇을 꿈꾸었는가’ 최혜실(생각의 나무)
무엇으로 꾸미잔 말이오? 다행히 우리 조선 여자 중에 누구라도 가치 있는 욕을 먹는 자가 있다 하면 우리는 안심이오.”
- 「잡감(雜感)-K언니에게 여(與)함」중
1918년에는 도쿄여자친목회가 낸 『여자계』에 구여성을 설득하여 신여성의 각성된 삶의 방식에 동의하게 만드는 실천적 삶을 그린 단
여성들은 아예 교육의 기회를 가질 수도 없었고 글로써 자기 자신을 표현할 시공간을 확보할 수 없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강경애는 독특한 지점에 놓인 작가라 할 수 있다.
강경애는 신여성에 대한 비판과 성찰을 통해 끊임없는 자기 갱신의 세계를 확보하려고 노력하는 작가이었으며 이는 신여성과
여성 문학이 대두하게 되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첫째, 일본 유학의 경험을 가졌고 둘째, 여성도 인간으로서 살 권리와 자유를 가졌다는 데 자각하였으며 셋째, 여성해방론과 계몽주의를 주창한 여성운동가들이었다.
김명순, 김일엽, 나혜석 등 ‘제1기 여류 문인‘들은 그들의 문학 작품을 통해 성(
1. 들어가며
한국여성문학에 비교적 관심이 많다고 자부해왔지만 생각보다 아는 것이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든다. 흔히 ‘1세대 신여성’이라 일컬어지는 1910년대에 글을 발표했던 나혜석이나 김명순 등에 대해서는 학술서나 대중서적을 통해 종종 접해 왔다. 그나마도 사적 삶의 독특한 행보나 스캔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