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는 두려운 것이고 정복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강경애에게 타자는 이러한 의미, 즉 ‘두려워하고 정복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다. ‘타자’와의 거리두기의 방법을 통해 주체를 형성해나기 위해 노력한 작가였다 여기에서는 강경애와 그의 작품 세계를 그에게 “두렵고 극
문학적 상징물이라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전후 현실의 극단적 자화상 “손창섭” p50~51
하지만 나의 또 다른 견해를 덧붙히자면 이러한 특징들은 작가 개인의 고통과 불만을 해소 시키는 작용도 하였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우리가 그날 짜증나는 일이 있거나 신경질나는 일이 있으면 미
대해 어떤 직접적이고도 일방적인 계몽적 언설을 늘어놓지 않는다. 작가 자신의 지식인적 자의식을 스스로 자제하면서 독자 대중과의 의사소통에 집중하고자 한 데서 기인한 바, 작중 화자의 이러한 ‘간접적’역할이 바로 이 작품의 아이러니적 풍자의 효과를 오히려 배가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문학운동도 이러한 문화운동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치·사회적 배경이 ‘시문학파’의 형성의 외적 요인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객관적 사정’ 조현현, 「한국현대사」(창작과비평사. 1984) p. 476
즉 외적 요인에 의해서만 ‘시문학파’가 형성되었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문
사회와의 통로를 마련하기 위한 노력의 표현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여성의 글쓰기는 근본적으로 자기 존재에 대한 성찰의 문제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또한 이러한 억압상태에서 자전적 성격을 띠는 여성의 글쓰기는 여성적 자아의 재발견이라는 내적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문학형식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