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편입은 몽골이 현재 몽골공화국과 중국의 네이멍구자치구로 분할돼 있어 언제든지 영토분쟁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비한 것으로 보인다.
칭기즈칸이 광활한 영토위에 세운 원나라가 명나라의 주원장에 밀려 북원으로 웅거하다가 17세기 청나라에 완전히 복속되면서 몽골은 역사에서
역사분쟁 이찬희 임상선 윤휘탁 공저 (동재 2006) p138~9
또한 원폭의 피해를 입은 것을 기화로 가해자였던 일본이 도리어 자신들이 피해자라는 의식을 갖고 있다. 이것이 문제의 원인의 하나인 듯하다. 동아시아의 역사분쟁 이찬희 임상선 윤휘탁 공저 (동재 2006) p160
ⅰ역사왜곡의 의도 동북아역사재
역사적 범주에 대한 합리적 사고를 회복하려는 노력의 일환 이였다. 그러나 '권고안'은 20세기 사태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무수한 난관을 극복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소위 '최소해법'이 적용되었다. 말하자면 "우선 가능한 것부터"라는 '최소해법'원칙이 역사분쟁 해결과정에서 적용된 것이다. 이러한 협
분쟁역사
⑴ 러·일 통호조약(1855), 러시아와 일본 간 영토 분쟁 조정
- 쿠릴 열도에서는 에토로후와 우루프 섬 사이를 러시아와 일본의 국경으로 하며, 사할린은 국경을 정하지 않고 잡거지로 한다는 것을 그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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⑵ 2차 대전 일본 패망 후 쿠릴열도는 러시아에 의해 점령, 센프란시스코
역사소설을 써 내려가고 있다. 일본이 그러하고 중국이 그러하다. 우리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사실에 대하여 많은 국민적인 분노를 표출하고 공식적인 정부의 외교채널을 통하여 항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일본의 이러한 의도는 굴절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독도를 국제적인 분쟁지역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