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역사교과서에 대한 철저한 검열을 시작하였다. 이른바 ‘교과서 공격’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ⅱ 역사왜곡의 경과
1955년 우익진영은 역사교과서의 ‘침략’ 기술을 문제 삼아 제1차 교과서 공격을 시작하였다. 당시 문부성은 ‘교과서조사관 제도’를 만들어 검정제도
동북아시아에 있어서 통합이 아닌 갈등관계에 원인이 된 민족주의에 관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특히 역사적으로 제일 먼저 근대화를 통해 민족주의 개념을 도입하고 이를 이용하여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제국주의 국가로 성장한 일본의 민족주의를 살펴봄으로써 현재 동북아시아의 갈등상황에 대한 원
일본의 정치적 우경화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외교적 손실을 고려한다면, 역사왜곡이나 신사참배, 영토분쟁은 결코 합리적인 선택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를 강행하는 이유는 자민당 정권의 주요 지지기반이 극우 민족주의 세력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독도분쟁은 - 센가쿠 및
중국은 역사왜곡과 신사참배 문제에 대해서는 남∙북한과 공동보조를 취하며 일본을 압박해 왔으나 독도문제에서 한국 측의 입장에 동조하는 것은 실익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의 언론은 남∙북한의 입장에 공감을 표하면서 주변국들과 영토 분쟁을 빚고 있는 일본
일본과 러시아 간의 영토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점에서 일본과 러시아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일본과 러시아 사이에 문제가 되고 있는 분쟁 지역의 중요성, 분쟁의 배경과 경위, 양국의 영유권 주장에 대한 분석과 비판, 일괄반환론과 영토분쟁 해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