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주체가 ’지배자로부터 피지배자로‘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은 제국주의의 침탈과 일제 식민지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므로 다른 나라와 달리 서구 근대역사학을 바로 수용할 수 없었다. 전개과정의 어려움은 있었으나 한국의 근대역사학은 식민지 지배와 제국주의 침투, 그리고 사회주
역사학 특히 동양사학에서 한국사연국가 거의 보이지 않았던 것은 역사연구자의 한국인식이 얼마나 빈약했던가를 말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1950년대에 성립된 「조선사」학은 일제시대의 경성제대를 중심으로 한 연배의 연구자와 동아시아 민족 해방과 사회주의화를 반영한 「조선」에 호의를 가진
한국사의 과학적 체계화를 위한 연구성과가 비약적으로 축적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시대구분 논의의 재론이 가능해지게 되었던 것이다.
본 글에서는 해방이후 남한 역사학계의 흐름을 파악하고 근대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는 서유럽을 통해 근대의 특징을 알아 본 후, 현재까지도 논의되고 있는 근
역사관을 더욱 심화 시키고 있다. 후소샤의 교과서에선 소위 대동아공영권을 긍정하고 태평양 전쟁을 소위 대동아전쟁이라 하여 식민지 해방전쟁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후소샤 교과서에서는 소위 대동아전쟁이 동남 아시아인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다는 서술과 중국, 한국 사람에게 고통을 주고
역사 왜곡, 나아가 역사 무용론으로까지 확산될 수 있는 위험한 시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균형적인 시각의 역사인식을 위해서, 내재적 발전론의 논리에 대해 확실한 근거로써 반박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대한제국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입장 ―식민지 근대화론과도 연장선상에 있는― 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