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주체가 ’지배자로부터 피지배자로‘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은 제국주의의 침탈과 일제 식민지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므로 다른 나라와 달리 서구 근대역사학을 바로 수용할 수 없었다. 전개과정의 어려움은 있었으나 한국의 근대역사학은 식민지 지배와 제국주의 침투, 그리고 사회주
. 그 가운데 한국역사연구회가 다년간에 걸쳐 근대사연구의 신진 기예의 역량을 집중적으로 동원하여 편찬한『1894년농민전쟁』1˜5(역사비평사, 1988˜1995)는 농민전쟁의 배경?전개?귀결을 경제?정치?사상 등의 제분야에 걸쳐 종합체계적으로 다루고 있는 성공적인 대기획물이다. 이 기획에 참가한
한국사의 체계화를 꾀함으로써 초창기 근대역사학의 성립에 기여한바 적지 않다. 그런데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이유는 그의 업적에 대한 정리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황의돈의 생애와 활동, 주요저작 등을 통해 그의 역사인식, 해원사학의 성격과
사학은 식민사학에 대항하는 것은 모두 민족주의로 포장 하였다. 박인호,「현대 역사관의 조류」,『한국사학사대요』, 2001, p269, p276
1980년대는 이만열의 <丹齋史學의 배경과 조건>이나 김정배의 <日帝下의 韓國古代史 硏究家>와 같이 신채호의 역사인식에 대한 배경을 알고자하는 연구와 서봉석의 <
한국사 시대구분론』(1970)의 간행으로 일차 정리가 되었는데, 근대의 기점에 대해서는 18세기 후반, 1860년대, 개항, 갑신정변, 갑오개혁 등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었다. 이는 전근대, 근대를 불문하고 시대를 구분해야 하는 역사인식상의 과제와 의의에 대한 올바른 입장을 공유한 가운데 시대구분의 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