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은 부인의 묘지에서 그동안 가난함을 웃음으로 달래던 그넉넉함을 잃고 만다. 가난이 얼마나 심했으면 연암은 일주일을 굶고 있다 찾아온 후배 이서구를 반갑게 맞이하여 밤새도록 자신의 생각을 그와 교유하기도 한다. 배고픈 것은 둘째이며 지적 유희와 사회 개혁에 대한 열망이 더 조급했던
들어있다는 말이다. 작가가 처한 현실을 그대로 쓸 때 참다운 문장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2) 문이사의(文以寫意)
이는 문학은 생각, 다시 말해 대상 그 자체에서 얻어진 인식을 있는 그대로 그려 내야지, 다른 무엇(작품, 관념)이 개재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3) 법고창신론 (法古創新論)
創新이 계승되어야 하며, 이렇게 될 때 후대 聖人에 의해 계승 발전된 것을 前代 聖人이 다시 살아나와서도 異議를 가하지 않으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옛것에의 악착스런 墨守도 주제넘은 無視도 君子는 따르지 않는다 하면서 朴齊家에게 古文에 抱泥되지 않는 것을 칭찬하면서도 立論이 지나
사상, 문학, 청문화에대해 알아보겠다.
2. 박지원의 생애
1. 연암의 초년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중미(仲美), 호는 연암(燕巖). 할아버지는 지돈녕부사 필균(弼均)이며, 아버지는 사유(師愈)이다. 그의 가문은 노론(老論)의 명문세신(名門世臣)이었지만, 그가 자랄 때는 재산이 변변치 못해 100냥
쌍거풀이 지셨으며 귀는 크고 희셨다. 광대뼈는 귀밑까지 이어졌고 기름한 얼굴에 수염이 듬성듬성하셨으며 이마 위에는 주름이 있는데 마치 달을 치어다 볼 때 그러한 것 같았다. 키가 커 훤칠하셨으며 어깨와 등은 곧추섰고 정신과 풍채는 활달하셨다. 박종채,『과정록』, 한국한문학연구, 제6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