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이주자가
부민단을 대대적으로 개편하여 ‘한족회’로 발전
부민단과 동일한 이념과 목적을 추구한
자신계와 교육회 등이들의 통합이 절실하게 요청
기관지로 <한족신보>를 발간
중앙총장과 각 부사장들이 각 지방을 순회,
의무금과 공납금의 헌납을 촉구하여 군기와 군장비 마련
지방관헌과 함경부민(咸鏡府民)의 월강(越江)문제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던 끝에 그들로 하여금 인수개간원서(引水開墾願書)를 제출케 하고 만주지역으로 이주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북간도로 이주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조선의 중앙정부와 청국(淸國)사이에 정식 외
연해주로의 재이주 혹은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는 러시아 및 독립국가연합에 거주하고 있는 동포를 이른다. 그들은 러시아어로 까레이스키로 불리며, 그들 스스로 조선인이나 한국인이 아닌 고려인이라 부르고 있다. 이렇게 부르는 데에는 구소련 거주 한인들이 스스로 꼬레 사람이라 부른 연유에서
고려인들이 거주하는 국가에서는 배타적인 민족주의 운동이 확산되었다. 이로 인해 고려인들은 직장에서 추방당하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자 다시 연해지방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현재 연해지방 거주 한인들을 중심으로 자치회가 형성되어 자치지역의 실현,
연해주를 개간하여 농토로 만들었으며, 농민에서부터 상공업, 관리에 이르기까지 지역사회 깊숙이 파고들었으며, 연해주를 소(小) 조선화 하였다. V.D. 페소키 『연흑용(沿黑龍)지방에서의 한인문제』, 1913
이우혜,김영웅,『30-40년대 러시아 한인 주민의 강제 이주에 관한 백서 1,2권』,1992,1997, 모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