話說濟公聽家人回話, 所有應用俱已全備, 站起身來, 同秦相, 李懷春一同往花園書房之內。
화설제공청가인회화 소유응용구이전비 참기신래 동진상 이회춘일동왕화원서방지내
각설하고 제공은 하인의 회신을 듣고 응용되는 것이 모두 이미 완전 구비되어 몸을 일으켜 진승상, 이회춘과 같이 화원 서
후자에 대하여는 1940년 발견될 때까지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한글의 형체에 대하여 고대글자 모방설, 고전 기원설, 범자 기원설, 몽골문자 기원설, 심지어는 창살 모양의 기원설까지 나올 정도로 구구한 억설이 있었으나 이 책의 출현으로 모두 일소되고 발음기관 상형설이 제자원리였음이 밝혀졌다.
한문을 전담하는 관직인 상문사를 설치한 것으로 나타난다.
詳文師 聖德王十三年改爲通文博士 景德王又改爲翰林 後置學士 所內學生聖德王二十年置(三國史記권39 雜志 제8 職官條)
이상 기록에 의하면 상문사는 그 후 명칭이 여러 번 바뀌었고 성덕왕 20년(721)에는 소내학생까지 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