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컨 터커의 <트랜스아메리카>를 보고.
부시의 동성결혼반대논란 2년 후, 던킨 터커 감독, ‘위기의 주부들’의 펠리시티 호프만 주연의 <트랜스아메리카>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영화를 보기 전에 난 <트랜스아메리카>가 <헤드윅>만큼이나 ‘칼라풀’하고 노골적일 거라 예상했다. 책이나 여러 매체
0. 여는 말
‘트랜스아메리카’(던컨 더커 연출, 펠리시티 허프만, 케빈 지거스 주연, 2004)는 담담하고 소박한 분위기의 영화다. 그러나 제목만큼은 거창하다. ‘미국을 경유/횡단한다’는 사전적 의미에다 ‘성적 경계를 경유/횡단한다’는 이야기를 연결시키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영화는 뉴욕에
들어가며…
트렌스 젠더와 게이의 만남… 참으로 자극적인 문구이다.
모두 우리사회에서 아직은 성적 소수자로 불리우는 사람들이다. ‘트랜스아메리카’라는 제목의 이 영화에서 이들은 각기 주인공으로 분해 영화의 전면에 부각되고 있다.
영화의 주연을 맡았던 펠리시티 허프만은 이 영화에서
레스터 번햄(케빈 스페이시 분)은 좌절감으로 가득 찬 잡지사 직원으로 하루하루를 무기력 속에서 살아간다. 그가 하루 중 최상의 기분을 느끼는 때는 단지 샤워실에서 자위 행위를 할 때뿐이고, 그후는 모든 것이 곤두박질 친다. 아내와 딸은 그가 한심한 실패자라고 낙인찍어 놓았고 직장의 상사는 그
2. 영화가 포함하는 의미
“죽음은 삶의 대극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잠재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동시에 죽음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라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글귀를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오늘을 사는 우리는 많은 것을 잃어버린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