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강점이자 호감의 포인트로 작용한다.
그런데 이 친절함이 너무나 좋으면서도 거부반응이 드는 것은 왜일까? 왜 나는 이 사랑스러운 영화를 보고 명쾌하게 ‘정말 좋아, 강추!’라고 한마디로 말할 수 없는 것일까? 이 ‘비비꼬인’ 심사의 정체가 무엇인지 찾아가는 방식으로 '트랜스아메리
들어가며…
트렌스 젠더와 게이의 만남… 참으로 자극적인 문구이다.
모두 우리사회에서 아직은 성적 소수자로 불리우는 사람들이다. ‘트랜스 아메리카’라는 제목의 이 영화에서 이들은 각기 주인공으로 분해 영화의 전면에 부각되고 있다.
영화의 주연을 맡았던 펠리시티 허프만은 이 영화에서
젠더, 인종, 계층과 같은 일반적인 범주를 적용할 만한 비판적 사회이론을 거부한다. 이런 거대 담론에 대한 포스트모더니즘의 거부는 성 정체성이나 보편적 억압이라는 페미니즘 개념에 배어있는 본질주의의 문제점을 드러내주는데 유요한 역할을 한다. 모더니즘이 지닌 남성 중심주의와 이성 중심주
그녀가 남편 에스테반(새 이름은 롤라)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처음에는 로사를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결국 마누엘라는 로사에게 마음을 열고 그녀와 함께 살면서 에이즈에 걸린 그녀를 정성으로 간호한다. 동시에, 아들의 죽음에 원인을 제공한 연극배우 우마와도 우정을 쌓아가게 된
트랜스젠더인 하리수는 TV에 나오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이런 경향으로 일반인이 매조키즘을 접하는 방법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미성년자 관람불가의 영화 등 성적 왜곡을 부추기는 자료를 보던지, 정신병-의학 관련 자료를 접하는 수밖에 없다. 이중 구하기 편리한 것은 전자이다. 이에 따라 일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