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신문》3호에 게재된 것으로 개화기 시가 가운데도 초창기에 속하는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창작을 게재하는 독립된 난이 마련되지 않은 채 실려졌다. 또한 그 꼬리에 “아무것도 몰은 사 감히 일언 옵내다.”라고 부기를 달았다. 이와 같은 일련의 사실을 통해 우리는
신문사의 편집진, 학회의 회원들로 이루어져 비전문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전문적인 시인으로 지적될 수 있는 사람이 육당 한 명 정도이고 그나마 그의 시인 인식은 신소설 작가들의 문사의식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이는 물론 소설과 시의 장르적 속성과도 관계되는 일이겠으나, 아무튼 개화기의
우리나라에 근대적인 초등 교육이 시작된 시기는 개화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초등 교육 기관의 역할을 하는 서당이 예전부터 있어 오기는 했지만 그곳은 근대적인 의미의 교육을 하는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홍범 14조가 선포되고 소학교령이 제정되면서 근대적인 초등 교육의 관제가 자리를 잡게 된
신문’인 『독립신문』이 담당했던 역할은 주목해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독립신문』은 대중들을 상대로 여러 근대적 개념들을 전파하면서 구습을 타파하고 자주독립과 문명개화를 주장하여 새로운 문명국가를 이루고자 했다. 특히 ‘국가’ 개념은 이들이 지향하는 문명개화를 실현하기 위한 전
2. 독립신문을 둘러싼 시대적 배경
(1) 정치적 배경
-독립신문의 정치적 배경은 멀리는 조보(朝報)까지 거슬러 올라가겠지만, 가깝게는 갑신정변으로부터 시작한다. 김옥균 등 개화파에 의해 추진된 갑신정변은 최초의 근대 정치로의 이행을 시도하는 정치적 변화를 추구했다. 이들은 후일 독립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