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문제를 오직 국가의 논리로 이해하기 해 준다. 독도가 한국사에 속해 있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일국사의 틀에서 역사를 전개해야 하므로 전근대 사회의 다양한 가능성에는 눈을 감아야 한다. 무엇보다 이 관점에서는 울릉도․독도를 지배․ 정복한 한반도 내 왕조들의 활
우산국이 귀속되다. 우산국은 명주의 정동 바다 한 가운데에 있는 섬으로 울릉도라고도 한다ꡓ 고 밝히고 있다. 신라에 복속하게 된 우산국이 울릉도에만 한정된 것인지 아니면 그 부속도서인 독도까지 포함된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 의문에 대한 답이 1808年에 편찬된 『만기요람(萬機要
일본은 포츠담선언을 통해 카이로선언을 전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을 선언하였으므로, 폭력과 강요에 의해 빼앗겼던 독도를 일본은 당연히 포기해야 한다.
당시 일본의 폭력성을 증명하는 대표적 예가 '고종강제퇴위'사건이다. 일본은 1905년 그들의 강요로 체결된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울릉도 도해금지(渡海禁止) 명령을 내릴 때까지 존재를 알지 못했다.
②한국이 오래 전부터 다케시마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근거는 없다.
팸플릿에서 삼국사기(1145년)에 우산국이었던 울릉도가 512년 신라에 복속했다는 기술은 있으나, 우산도(다케시마)에 대한 기술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하지만
신라는 우산국을 영지로 하고 있었기에 동해상에 울릉도와 독도 2개의 섬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인지했음은 물론이고 영지로서 다스리고 있었다. 그 증거로서 조선시대 초기부터 후기에 걸쳐 동해에 [우산, 울릉] 2개의 섬이 존대한다는 문헌상의 기록 및 지도상의 표식이 많이 등장한다.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