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8년 이윤수의 아들로 태어난 이규보는 9세 때부터 중국 고전을 두루 읽기 시작하였고 글재주가 남다르게 뛰어나 신동이라 불렸다. 그러나 천재라 불리던 그는 15세 때 과거에 실패하고 19세 때 다시 응시했으나 또 다시 낙방하고 만다. 이는 이규보가 워낙 술과 시를 좋아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
원류를 같이 한다고 하였다. 위에서 보다시피 “전”양식의 원류는 『춘추(春秋)』에서 비롯되지만, 하나의 문체로써 인식되어 작품화된 것은 한 동방삭의 <비유선생전>이다. 이것은 문인의 사전으로, 이후 정사에 기록되지 않은 인물이 각종 문집에 기록되었다고 볼 때 사전이 열전에 앞서서 창작되었
Ⅰ. 개요
국문학과 민속학은 민중의 문학인 구비문학의 영역에서 만나게 되었다. 특히 해방 이후의 국문학계는 민속학이 그 학적 정립을 이루어지기까지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 집의 살림을 대신 살아준 셈이 되었다. 그래서 일제시대의 민족주의 국학을 계승한 국문학자 또는 국문학적 민속학자들
Ⅰ. 개요
음악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전근대의 문학은 사실 노랫말에 지나지 않는다. 예외적인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멀리 상고 시가로부터 향가나 고려 속요는 물론, 시조나 가사까지도 모두 가락에 얹어서 부르는 노랫말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일반적인 문학의 존재 방식은 개화기에 이르러 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