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보는 사마시에 장원으로 합격했다. 그러나 장원급제 한 후로도 오랫동안 벼슬을 하지 못하였다. 24세 때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이규보는 개경의 천마산에 들어가 시와 글을 지으며 지냈는데 이 때 ꡐ 백운거사ꡑ라는 호를 얻게 된다. 이후 개경으로 돌아온 이규보는 <구삼국사>를 구해 읽고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고 하지만, 그의 문학은 모두 고사를 사용했으며 만년에는 불교의 귀의했다고도 한다. 이렇듯 그의 생애, 작품과 이론의 세계, 문학관 등에 후대의 연구는 서로 어긋나 있다. 그래서 이후에 본론에서는 이규보의 생애와 작품과 이론의 세계, 문학관을 다루어 보도록 하겠다.
작품의 성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의 대상이 될 만하다.
이규보가 평생을 시를 지어 현재 남아있는 시만 2088수 가량 되는데 이런 많은 작품들이 그가 살아왔던 당시 시대의 모습이나 생애와 밀접한 연관이 있을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규보의 문학작품들을 알아보기 전에, 우선적으로 그
규보 李奎報 (1168 ~ 1241)의 칠언시 감상
【 작가의 삶 】
이규보는 고려 의종 22년(1168) 음력 12월 16일에 당시 황려현(黃驪縣)으로 부르던 오늘의 경기도 여주에서 호부시랑을 지낸 이윤수(李允綏)와 김씨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여주. 초명은 인저, 자는 춘경(春卿)이었으며, 아호는 백운
이규보 자작 시문에 대한 자평이 많이 실려 있다. 내용은 크게 3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다른 사람의 시를 평한 것이다. 을지문덕이 지은 <與隋將于仲文詩>에서부터 신라 진덕여왕의 <太平詩>, 최치원·정지상·김부식·오세재 등 우리나라 시인의 작품, 그리고 중국 시인들의 작품에 대해 그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