⑷ 소품문 창작의 발달 과정.
18세기 소품문 창작에서 정점을 이루는 인물들은 여럿 있으나 그 중, 백탑파 백탑파란, 원각사지 10층 석탑 인근에 살았던 북학파 시인을 말하는 것으로,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박지원 등이 있다. 현재의 서울 종로 2, 3가 일대는 원각사가 있었기 때문에 대사동(大寺洞)
1.3 박제가
후사가 네 사람 중에서 사회사상의 각성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준다. 박제가는 과거제도의 폐단을 비판하고, 실용적인 가치를 가지지 않은 시문도 아울러 배격했으며, 문학을 하되 사회의식과 밀착시켜 세상에 이롭도록 하자고 주장했다. 전통과 획일주의를 거부하고 자기의 개성을 담고 있
사대부가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과거를 보아 입신해 가문을 빛내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면, 선비로서 마땅히 할 일이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고 개혁의 방향을 찾는 데 있다고 자각한 사람들을 실학자로 일컫는다.
이익(1681~1763)은 진출의 길이 막히고 가족이 몰락하는 처지에서 겪는 참담한 고난을
유득공이다. 그는 무엇인가를 절대적 기준으로 놓지 않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상대주의적 태도를 가졌는데 이런 상대주의적 세계관 아래서 펼친 것이 북학사상이다. 유득공의 대표작인 ‘발해고’는 당나라 시대 지어진 ‘발해국기’의 흔적이 남아있던 ‘신당서’에 주로 의존했다. 여기서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