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대략 또 송나라 세조(효무제 유준)과 태종(명제 송욱)의 여러 비루한 자질구레한 일을 제나라 군주가 보고 대면해 요약해 말했다. “효무제의 사적은 아직 반드시 다 그렇지 않고 짐이 일찍이 송명제를 섬겼으니 경은 짐을 위해 악행을 꺼려 다행히 다 말하지 말라!”
約又多半刪除, 不致蕪穢。
황태후 지서달사 친결만기
太和: 366~371
臨朝稱制:수렴청정-섭정과 동일한 의미, 조회에 임석하고 황제의 명령과 같이 황태후의 명령
풍태후가 다시 조정에 임해 섭정으로 칭제하며 태화로 개원하고 존칭으로 태황태후가 되어 글을 알고 일에 통달해 친히 만기를 결정했다.
授兄馮熙爲太師中書監。
却說巴東王子響, 系齊主?第四子, 本出爲豫章王?養兒。
각설파동왕자향 계제왕색제사자 본출위예장왕억양아
각설하고 파동왕 소자향은 제왕 소색의 넷째 아들로 본래 예장왕 소억의 양자 출신이다.
?早年無子, 後來連生五男, 乃命將子響還本, 進封巴東王。
억조년무자 후래연생오남 내명장자향환